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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귀농귀촌]채색·유하 부부의 시골살이

you can do it 2013. 10. 29. 07:54

[기분이 좋아지는 인터뷰]채색·유하 부부의 시골살이

 

‘귀농歸農부부’냐고 물으니 ‘시골에서 사는 부부’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느냐고 물으니 자급자족하는 삶의 일환이라 한다. 시골에서의 삶이 큰 도전으로 다가왔냐고 물으니 늘 원하고 고대하던 방향으로 한 발짝 다가선 것뿐이라 한다. 결혼한지 6개월째 신혼의 단꿈에 푹 빠져있는 채색·유하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듯 보이는 그들이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말한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교감하고 교류하며 살았던 그 옛날 본래의 모습처럼. 우리는 현재 평범한 것을 잊고 그것을 특별하다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부부의 대화 속에 그것의 진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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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생명답게 살기 위한 길

2011년 여름, 녹색연합이라는 환경단체에 몸 담고 있었던 채색과 착한여행이라는 공정여행사 일원이었던 유하(본명 송유하). 서울 성곽 공정여행을 도모하기 위해 이 둘은 첫 만남을 가졌다. 서울 성곽을 답사하면서 자연 환경에 관해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연인이 되고, 2013년 봄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비싼 웨딩드레스 대신 개량한복을 맞춰 입고, 신부화장과 피로연, 사진촬영도 생략했다. 자연을 생각한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유기농 뷔페를 준비하고, 재생용지와 콩기름으로 인쇄하는 청첩장을 만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부가 직접 준비하느라 일반 결혼식과 비교해 서툰 것 투성이었지만 부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하객들이 이해하기엔 더없이 충분한 결혼식이었다.

채색·유하 부부는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물렀던 서울살이를 접고,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시골살이를 실천하기에 이른다. 먼저 어디에 터를 잡을지 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한 부부는 전국일주를 단행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출발해 땅끝마을 해남에 이르기까지 6개월간 두 발로 전국팔도 방방곡곡을 누볐다. 큰 비로 갑작스레 불어난 강물로 가슴까지 차오른 강을 가로 질러야 했을 때는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대한민국 최대 석회석 광산이 있는 자병산에 닿았을 때는 도시개발을 위해 거대한 산을 깎고 있는 모습에 큰 충격과 죄책감마저 들었다.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을 둘러볼 때마다 부부는 배우고 깨닫는 순간을 반복해야 했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에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데 인간들은 마치 혼자 남아도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는 과정에서 부부는 탄식해야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한 부부의 다짐은 자연 앞에서 더욱 견고해져 갔고, 도보 여행의 끝자락에 이르러 경북 봉화에 터를 정하고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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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경북 봉화로 집터를 정했나?

채색 전국일주를 시작했을 때 ‘걷다가 우리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냥 거기에 짐 풀고 살자’라고 생각했다. 한데 안타깝게도 여행자의 입장이다 보니 늘 제3자의 시선으로밖에 안 보이더라. 그 지역과 마을에 깊숙이 들어가 알아봐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또 아무리 우리가 마음에 들고 좋은 곳이라도 자금사정을 고려해야 했다. 먼저 우리 부부가 포기할 수 없는 사항을 정했는데, 그게 큰 산 아래 강이 지나가는 곳이었고 지리적인 요소를 따져보니 봉화가 딱이다 싶었다. 우리나라 3대 오지 봉화, 영양, 청송을 ‘BYC’라고 부르지 않나? 봉화 북쪽에는 백두대간이 동서로 뻗어나가고, 중심으로 내성천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낙동강 쪽에는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맥이 자리한다. 큰 산 아래 큰 강이 두 개나 있고 게다가 땅 값도 비싸지 않아 우리에겐 최적의 집터였다.

집과 논밭을 구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나?

유하 결코 쉽지 않았다. 시골에 가면 빈집이 많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정작 시골에 내려오면 빈집이 많지도 않고, 있어도 외지인에게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도시보다 시골은 이웃사촌의 문화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보니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는 외지인에게 집을 내어주는 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집을 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에는 집을 못 구해 읍내에 빌라를 구해서 살다가 우연히 지금의 시골집 앞에 집을 세준다는 글을 보고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해 계약을 했다.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땅을 구할 때는 봉화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부동산을 통해 알아봤다. 땅이 대체로 1000평, 2000평 이상 큰 땅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돈이 많지 않은 우리 부부는 마음에 드는 땅을 보고도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러다 골짜기 길 끝에 붙은 땅이 나왔는데 가격도 저렴했고 땅 크기도 작아서 우리 부부에게 안성맞춤이다 싶었다. 서울에서 살던 채색의 전세자금을 빼서 지금의 논과 밭을 샀다.

현재 어떤 품목의 농사를 짓고 있나?

유하 아직 시작단계라 단일 작물을 다량으로 하지는 않고 있다. 시골살이의 첫째 목적이 자급자족하는 삶이 었기 때문에 현재는 우리가 먹을 것을 직접 생산하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 우선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고추장과 된장, 간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고추, 메주콩, 서리태를 심었고, 들깨와 참깨, 감자, 고구마, 배추, 수수, 조, 땅콩, 옥수수, 당근, 다양한 토종 콩, 열무, 벼, 호박, 파, 상추, 참외 농사를 짓고 있다.

부부에게 농사는 생소한 작업이었을 텐데 첫 출발은 어땠나?

채색 언제 심는지, 언제 수확하는지 모든 게 다 생소하고 어려웠다. 책과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고 주변 밭의 상태를 보고 눈치껏 따라 하느라 참깨는 좀 늦게 심기도 했고 여러모로 서툰 흔적이 역력하다. 한번은 어렵게 구한 토종 고추씨앗을 무작정 밭에 직파했다가 아무 소식이 없어서 귀한 씨앗을 다 날린 적도 있었다. 그 뒤로 모종을 키워서 옮겨 심고 있는데, 내년에는 직파를 한 뒤 혹시 모르니 모종을 따로 키워서 싹이 안 나오는 곳에 옮겨 심기로 했다. 천천히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급할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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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관련 지식은 어디서 찾고 배우고 있나?

유하 일반적인 농사와 달리 가능하면 토종씨앗을 구해서 비닐을 덮지 않고 축분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채 농약과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엔 주변 어르신들의 따가운 충고를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어르신들의 충고가 감사하긴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싶어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 편이다. 직접 농사를 해보니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한해 한해 농사를 지어보면서 경험이 쌓이면 언제 심고, 언제 수확하는지, 심는 간격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등 적응이 될 거라 생각한다.

채색 우리 부부가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몬산토 같은 대규모 종자회사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유전자 조작으로부터 먹거리를 지켜내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토종씨앗을 구해서 해마다 직접 채종하고, 그 씨앗으로 이듬해에 다시 심고, 또 채종해서 다시 심고 하는 것이 우리 농사의 핵심이다. 농사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씨앗을 잘 채종하는 거다. 씨앗마다 채종하는 요령이 있는데 그런 건 아직은 그때그때 씨드림이라는 토종씨앗 모임에 물어보면서 배워가고 있다.

아직 시작단계이기는 하나 농사 짓는 것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가?

유하 올해가 첫 농사라 작물을 팔아서 돈을 벌지도 못했고, 농사짓는 것만도 늘 새롭고 배울 것들이 많아서 따로 다른 밭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거나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년부터는 효소나 농사지은 채소를 판매할 계획이다. 허나 돈을 안 쓰고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고 싶지, 돈을 버는 것에 많은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채색 우리 부부의 목표는 ‘지출이 아예 없거나 최소로 이뤄지는 삶’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당한 크기의 땅이 있어야 하고, 그곳에 집을 지을 돈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몇 년간은 어느 정도 수익구조를 염두에 두는 것뿐이지 일상을 풍요롭게 살기 위한 경제활동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일상의 풍요는 경제적인 요소가 아닌 환경적인 요소가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했을 때 현실적인 문제 같은 것에 부딪히지는 않나?

유하 임신을 하고 나서 더욱 확실히 느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말이다. 산과 나무, 풀, 강 등 환경 자체가 저절로 태교 역할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공기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참 다행이지 싶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우리 마을에 젊은 사람이 부족해서 아기에게 또래 친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골살이로 변화된 점은 어떤 게 있나?

유하 남들에게 의존해 살아가던 삶의 방식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으로 바뀐 게 가장 큰 변화다. 예전에는 깻잎 하나도 마트에서 사다가 먹었다면 지금은 직접 씨앗을 심고 길러서 깻잎을 따다가 먹고 있으니까. 모든 걸 스스로 해내기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자급자족하는 삶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채색 ‘먹거리의 혁명’이 찾아왔다고 할까.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밭에서 따온 온갖 채소가 매일같이 밥상에 올라오니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 게다가 맛도 전에 알던 그 맛이 아니다.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상추가, 깻잎이, 고추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반문할 정도다. 올해 김장이 무지 기대된다. 배추를 300포기 정도 심었는데 친환경 퇴비를 조금 밖에 안 줬다. 일반적인 배추보다 훨씬 크기는 작을 테지만 배추의 당도는 최고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환경보호를 위해 부부가 실천하고 있는 특별한 생활습관이 있나?

유하 석유와 전기 등의 에너지로부터 자립하고 싶은 마음에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사지 않았다. 반찬은 그때그때 해먹고 있고, 빨래도 손빨래를 하고 있다. 밥솥도 무쇠 솥을 사용하고 있고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선풍기와 작은 믹서기 두 개인데 올해 여름 밭일을 하다가 너무 더워서 그만 고민 끝에 선풍기를 구입하고 말았다.

채색 집에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 대신 생태변기를 사용하고 있다. 똥오줌은 귀중한 퇴비가 되기도 하지만 물로 매번 씻어 내리면 다량의 물이 필요하고 그것을 정화해서 다시 사용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 부부는 오줌은 따로 받아서 발효시켜 액비로 사용하고, 똥은 톱밥을 뿌려서 퇴비장에 모아 발효시키고 있다.

부부가 생각하는 ‘귀농의 삶’이란 뭔가?

유하 귀농이라고 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을 뜻할 텐데, 귀농이라기 보다는 ‘내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 우리 부부의 목표이자 희망이다. 그 흔한 풀도, 나무도, 다람쥐도, 고라니도 다 스스로 먹거리와 잘 곳을 찾아서 살아가는데 우리 인간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터전인 지구가 건강해지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유하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서 차츰 목화에서 얻은 솜으로 옷도 만들어 입고, 몇 년 후에는 흙집도 직접 지을 계획이다. 채색 자급자족하는 삶을 두고 남들은 우리 부부가 마치 대단히 이상적인 꿈을 갖고 있다고 말하더라. 한데 실제로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삶이 널리 행해졌다. 이는 이상적인 게 아니라 도시살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급자족 능력을 상실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 부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니 녹슬어버린 능력에 열심히 기름칠을 해서 잘 다듬고 잘 사용하려 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부지런히 살겠다.

[글 추효정 사진 채색]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98호(13.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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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평여행-귀농귀촌
글쓴이 : 후에미소(권대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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